‘오리지널 드로잉쇼(Original Drawing Show)’는 2007년 김진규 예술 감독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미술 퍼포먼스 공연이다. 제각각의 특징을 지닌 4명의 외계 생명체 룩(look)들이 고전과 현대는 물론 동, 서양을 넘나드는 갖가지 미술적 요소를 표현한다.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활용해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리지널 드로잉쇼’는 올해 12월 31일까지 경향아트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술 퍼포먼스의 ‘오리지널’ 기획자, 김진규 예술 감독에게 작품과 향후 방향에 대해 물었다.

- 미술과 공연을 접목시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원래 미술대학 교수였다. 어렸을 때 미술이 즐겁고 행복해서 시작했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즐거움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입시를 위한 미술이 성행하고 시험을 위한 결과가 중요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면서 즐거운 미술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림이라는 것은 결과는 둘째 치고 그리는 과정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 나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그림을 그린다. 어느 날 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쇼한다’며 놀렸는데, 이 말을 듣고 ‘쇼’를 보여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과정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미술의 과정을 보여주는 ‘쇼’를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1998년도다. 처음에는 ‘2~3년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미술 재료 속에 숨어있는 특성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새로운 미술 기법도 찾아다녔다. 흑백으로 그린 그림이 칼라로 변하고, 폭포 그림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면 등을 이때 구상했다.

그다음은 표현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공연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 다양한 공연을 보고 경험했다. 생각보다 할 게 많았다. 고민하는 기간이 2~3년이 아니라 5~6년으로 길어지다 보니 신경성 질환이 왔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다. 미술과 공연을 접목시켜 공연을 만든 전례가 없었다. 친구들은 안정된 길에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나는 누구도 하지 않던 일을 하고 있었다. 공연 쪽에서도 환영하지 않았고 미술계에서도 인정받지 못 했다.

공연 기획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됐을 때에 심장마비를 겪었다. 숨이 끊어졌다가 살아났다. 그러고 나니 다 잃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돈도, 건강도, 사람도 잃었다. 어느 날 햇볕에 앉아있다 보니 문득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뭔가 가지고 있을 때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때부터는 매일매일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이런 마음으로 초연을 올렸던 작품이 ‘크라이스트 드로잉’이었다. 원래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결국 처음 공연 기획을 한 지 9년째에 작품을 완성했다. 공연을 하고서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근데 그게 대박이 났다.

-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이 외계인이다.

작품 속 외계인들은 비행체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다가 지구로 불시착한다. 그들은 말이 아닌 그림으로 교감을 나누는 존재들이다.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면 일상생활 속에 외계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생활 속에도 외계인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지만 각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외계 생명체의 눈을 통해 일반적인 우리 생활이지만 동시에 잊고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표현한다.

- 일본, 호주에서도 공연했다. 나라 별로 각색 과정을 거쳤는지?

한국에서 ‘드로잉쇼’를 발표하고 인기를 얻을 즈음 투자자가 왔다. 2년 만에 공연을 통째로 뜯어갔다. 사기를 당하고 좌절하고 있던 차에 오히려 외국에서 ‘이 공연의 오리지널이 누구냐’며 찾아줬다. 일본에서 몇 년 동안 공연에 대한 조사 과정을 거친 후에 공연을 하기로 했다. 공연이 올라가기 바로 전에 매우 큰 쓰나미가 일본을 덮쳤다. 일본인들이 정신적 공황에 빠져있는 상태였다. 일본 관계자가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문화’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나도 사람이라는 쓰나미를 맞고 쓰러져있는 상태였지만 힘을 짜냈다.

일본에서 방송 활동으로 홍보를 한 후에 도쿄 긴자 극장에서 보름 동안 공연을 했다. 일본 미술계에 숨어있는 아픔들을 반영하는 각색 과정도 거쳤다. 그때는 직접 무대로 올라서 공연을 했는데, 일본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그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니 유명해져 있었다. 한국 문화관광부에서 난타 이후 최고의 한국 공연으로 선정됐고, 경향아트빌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의 넌버벌 공연계에서 뚜렷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곧바로 호주에서 공연 요청이 왔고, 호주 공연도 성황리에 끝마쳤다.

- 첫 공연과 지금 공연에 차이점이 있다면.

공연 자체의 변화보다 ‘드로잉쇼’의 배우들을 어떻게 전문가로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배우에 따라 미묘한 감동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즈음 아류작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원본만의 차별성을 지니기 위해서라도 배우의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연 이름은 ‘드로잉쇼’지만 오히려 미술 전공자는 쓰지 않는다. 미술 전공자들의 지원은 많았으나 드로잉 기법 등 새로운 것을 알려주면 나중에는 과다 액션을 취하거나 ‘그래도 내가 전공잔데’하는 우월감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 배우들은 비전공 분야기 때문에 감독의 주문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 문제다. 겸손한 배우들이 모여 계속적으로 공연에 대한 연구 개발 작업을 하는 중이다.

- 공연 기획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연 기획을 할 때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일 가도 여환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나는 공연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전공이 뭐였고 무엇을 배웠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밥 만드는 사람이 맛에 대해 홍보를 한다. 언제까지 홍보만 할 것인가, 국밥만 맛있게 만들면 멀리서도 찾아온다. 기획이든 연출이든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것을 해야만 한다는 분명한 소신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세상 고마운 줄 모르고 나 잘났다고 살아왔다. 어려운 시절에 숨이 막히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공기만 잡아먹고 사는 게 아니라 세상에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연을 하고 싶다, 내가 굶어 죽더라도 그 자체로 후회가 없겠다’라는 각오를 다졌다. 내가 국밥집을 하던 구두닦이를 하던 어떤 일을 하던지 최고의 국밥 장사, 최고의 구두닦이가 되면 전문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꿈꾸는 분들에게 드리는 일급비밀이 있다. 열심히 하는 건 누구나 한다. 그전에 해야 할 것은 세상에 대한 감사다. 통속적이고 재미없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에서 나온 진심이다.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일이 달라진다. 내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고 매일 꿈을 생각하다 보면 이뤄지게 되어 있다.

- ‘오리지널 드로잉쇼’ 기획자로서의 꿈은 뭔가.

오리지널 기획자는 이 작품으로 얼마나 벌 것인가에 빠지면 안 된다. 하루 네 끼 먹고살 것도 아닌데, 돈을 대단하게 벌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원래 이 작품을 만들려고 했던 취지, 세상 사람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공연을 통해 꿈꾸는 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한 쪽에서 묵묵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가은 기자 newstage@hanmail.net
사진_(주)드로잉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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