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5.1.10 금 23:53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리뷰
[리뷰] 신체언어연극 '보이첵', 비참한 세계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한 자의 슬픔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냐하면 삶의 목적은 발전이며, 삶 그 자체가 발전이니까. 따라서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게오르크 뷔히너

세상의 본질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내뱉듯 지껄이는 대사들, 비참한 세계를 애써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한 자의 가차 없는 날카로운 고발, 그 모든 뒤에 숨은 한없는 연민, 군더더기 없는 단호하면서도 절박한 몸짓, 비약하듯 확 뛰어넘는 장면 간극, 추상화 같으면서도 깔끔하고 세련된 군무, 익숙한 듯하면서도 불편하게 사람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음악 그리고 너무나 상징적인 소품 의자까지.
배우들의 연기도 눈부셨습니다. 권재원은 악마에게 학대당한 뒤 인간의 존엄성과 영혼을 놓아 버리고는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보이첵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순순히 자신을 버려버릴 수 있습니다. 정은영은 빨간 입술처럼 강렬하게 유혹에 넘어가는 마리의 역을 연기했고요. 손짓 발짓만으로도 그렇게 섹시할 수 있다니요! 그녀는 검정과 회색만으로 이루어진 무대에서 너무나 관능적이었습니다. 죽을 때도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고요. 그래서 더 비극적입니다. 그리고 11개의 나무 의자. 나무의자는 우리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바로 그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즉 환경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죠.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그대로 정지시켜 액자에 담아 보관하고 싶을 만큼 현대적이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그 안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고 따뜻한 철학적 사유까지 담겨 있었고요. 정말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2007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2관왕 수상작!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작품은 아시아 작품 최초로 영국 오로라 노바 극장에서 공연했고 오전 10시 30분이라는 다소 불리한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습니다. 2007년에는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헤럴드 엔젤 어워즈와 토털 씨어터를 수상했고 영국 BBC 방송 선정 올해의 에든버러 Top 10에 선정됐고요. 무엇보다도 서양 고전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창작해서 다시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는 데 큰 박수를 보냅니다.

똑바로 보라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비참함을!
그럼, 먼저 이 작품의 원작에 대해 살펴볼까요. 이 작품의 원작은 24세에 요절한 독일의 천재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의 미완성 시민 비극 『보이첵Woyzeck』입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표현주의 희곡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독일 극문학사의 가장 뛰어난 대가 중 한 명이죠. 그는 살아생전 단 3편의 희곡과 마지막 미완성 유작 『보이첵』을 남겨두고 떠났답니다. 정말 너무나 뜻밖의 이른 죽음이었죠. 당시 그는 죽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1837년 1월 27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 예전처럼 아주 건강해.”
그러나 그는 그 편지를 쓴 지 3주 만에 취리히를 휩쓴 장티푸스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보이첵』은 결말이 나지 않은 열린 작품으로 남아 있게 됐습니다. 우리 관객들에게 아내를 죽인 보이첵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보이첵을 살인자로 만든 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남기고요.
원래 이 작품은 실제 일어났던 형사사건입니다. 1821년 군대에서 이발사로 일하고 있던 J. C. 보이첵이 동거하던 여인 마리를 칼로 9번이나 찔러 잔인하게 살해한 뒤 공개 처형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오르크 뷔히너는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그 실화 속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보이첵의 상황을 다시 재구성해냅니다. 이 작품은 세계 희곡 사상 처음으로 보잘것없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보이첵은 육군 일등병 제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냥 평범한 한 인간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돈이 없다는 것뿐이지요. 그는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 마리와 결혼도 못하고 동거를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그 아이는 사생아라 교회에서 세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중대장은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하죠. “보이첵, 자네에겐 도덕이 없어.”
그는 군대에서 중대장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수동적인 인물로 살아갑니다. 그런 그는 군대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돈이 부족해 의사의 임상실험 대상이 됩니다. 의사는 동물실험을 하듯 보이첵에게 완두콩만 먹이면서 그 변화과정을 연구합니다. 의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죠. “보이첵, 귀를 움직여보라고, 오줌을 싸봐!” 뭐, 사실 가난한 사람들은 버러지만도 못한 거죠.
그렇게 착하고 평범한 남자 보이첵은 군대 중대장과 의사에 의해 철저하게 착취당합니다. 모욕하는 대로 모욕당하고 조롱하는 대로 조롱당하면서 무기력하게 시키는 대로만 합니다. 곧 그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무너져 버리고 말죠. 그는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버려버립니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마리가 군대 악대장과 불륜을 저질렀다고 의심하게 되고요. 마리가 진짜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사실 모호합니다. 보이첵의 정신상태가 이미 정상이 아니었으니까요.
자, 이 부분에서 우리는 어쩌면 의심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그렇게 무력해질 수 있다니? 그건 보이첵이 너무 나약한 인간이라서 그래. 근데 정말 그럴까요?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심리 실험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있는 필립 짐바르도가 1971년 한 ‘모의 교도소 실험’이지요. 일명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그 실험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자, 보이첵의 비극을 더 살펴보기로 해요. 마리는 보이첵이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고 가족입니다. 그래서 마리를 살해한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자기 자신을 살해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말에 이릅니다. 너무나 비극적이지요.
이 작품은 원작 『보이첵』의 주제 의식을 보다 절제된 신체 언어를 통해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세계에 의해 인간은 철저하게 무력해지고 그 존재는 갈가리 찢겨지고 마는 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응시하듯 그려내고 있죠. 똑바로 보라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비참함을!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이상은 모두 개소리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가, 도덕은 모든 상황에서 유효한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이상은 모두 허무맹랑한 개소리다.
원작자 게오르크 뷔히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적어도 지능이나 교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를 경멸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백치가 되고 범죄자가 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똑같은 환경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모두가 균등하게 됐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능이란 우리의 정신세계의 극히 미세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교양 또한 지극히 우연의 소산일 따름입니다.”


공연명 보이첵
공연장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관람일 2008년 3월 8일
연출 임도완
출연 권재원, 백원길, 고창석 등
제작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기획 아르코예술극장, 아트노우


안현주 bread-win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뉴스테이지  

<저작권자 © 뉴스테이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테이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